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예 아리아인 (문단 편집) === 인종 개량론에 대한 [[와전]]과 거짓 혼혈 정책 [[루머]] === '''일본은 혼혈 정책을 시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일본 제국 시절 그들의 사상적 [[헤게모니]]는 일본 민족(야마토 민족)이 가장 우수하므로, 열등한 외국인과 혼혈을 배척하고, 순혈 일본 민족(야마토 민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John W. Dower, War Without Mercy: Race & Power in the Pacific War p45][* "그들은 정신력이라는 우월한 [[동북아]] 문명이 서구 문명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이것이 소위 '야마토 정신'이며, 우리 나라(미국)에 대한 경멸의 원인이기도 하다." 미해군 과달카날 전투보고서 中]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미치지 않고서야 그 어떤 국가의 정부가 본토의 자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혼혈 정책을 시행하겠는가? 애초에 실현 가능한 방법도 없지만, 그 당시 근대 국가의 강한 원동력이었던 '우리 민족이 가장 위대하다'라는 명분을 버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또한 당시 일본은 [[국수주의자]]들이 매우 극성이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저런 정책을 시행하려 했다면 정부가 전복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영어의 공용어화를 주장한 적이 있던 일본의 초대 문부대신 모리 아리노리는 국수주의자의 칼에 찔려 죽었다. [[메이지 유신]]은 조선으로 치면 [[개화파]]의 반대 세력인 [[위정척사파]]에 해당되는 세력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가장 강력한 명분은 '천황의 일본'을 오랑캐(서양 세력)로부터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중국 주나라 시절부터 있던 개념인 '존왕양이'에서 차용하여 '[[존황양이]]'라고 하였다. 이는 에도 막부가 막을 내리고 천황에게 권력이 넘어간 '[[대정봉환]]'으로 알 수 있다.] 이 '천황의 일본'이라는 것은 일본의 전통, 정신, 고유한 것 등을 내포한 개념이었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서양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실제로 메이지 유신부터 시작한 일본 제국의 근대 사상의 [[헤게모니]]는 [[아시아주의]]로 시작하여 [[대동아공영권]]으로 종결되는 일본식 [[중화사상]]에 가까웠다.(중국은 세계의 중심 -> 일본은 신의 나라, 중국 중심의 책봉과 조공 관계 -> 일본 중심의 대동아공영권) 단, 대동아 공영권은 무력에 의한 팽창주의였고, 책봉과 조공은 중국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변국의 독립과 안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타협과 동의로 이루어진 사전에 갈등을 방지하는 시스템이었다. 특히 다카하시 요시오(1861.10.2 ~ 1937.12.12)[* 사업가이자 다인(茶人)이자 문인(작가)]라는 작가가 주장한 '일본 인종 개량론'이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 퍼져서, '일본 정부가 혼혈 정책을 시행했다' 혹은 '하려고 했다' 라는 식으로 왜곡, [[와전]]되었다. 사실 다카하시 요시오는 저런 괴상한 극렬 주장으로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업가이자 다인(茶人)으로서 차(茶)에 관련된 책을 내는 문인이였고, 대표작들도 전부 차(茶)에 관련된 저서들이다. 문제는 이 사람이 '''20대 초반에''' 냈던 데뷔작이 일본 인종 개량론이었다. 그런데 데뷔작 이후 인종 개량론과 관련된 저서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을 보면, 데뷔할 때 시선을 끌기 위해 일부러 괴상한 내용의 책을 냈던 걸 수도 있다. 평생 출판했던 저서들을 살펴보면, 일본 인종 개량론 하나 빼고, 전부 차(茶)와 관련된 저서뿐이다. 애초에 인종 개량이 본인의 관심 분야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끌었다|등단하면서 시선을 끌기 위해 저런 극렬 주장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충분히 가능하다. 요즘으로 치면 다른 분야로 출세한 사람이 20대 초반 청년 시절 디시에 한번 뻘글 올린 게 쓸데없이 주목받은 것과 비슷하다. || [[파일:1579231978.png|width=330]][[파일:1579231973.jpg|width=200]][[파일:1455805175951_FBSvYAY.jpg|width=350]] || || 일본 인종 개량론에 대해 설명할 때 한국 인터넷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미지들이다.[br]'''모두 다카하시 요시오의 주장에 대한 것들이다'''.[* 한국 인터넷에는 다카하시 요시오가 주장한 일본 인종 개량론이 위 이미지들처럼 여러가지 형태로 돌아다닌다. 종종 다른 사람이 주장한 것처럼 위장된 경우도 있다.] || 다카하시 요시오의 일본 인종 개량론을 요약하면, 일본인은 열등하니 서양 여자들을 수입하여 혼혈을 낳게 하고 육식의 비중을 늘려 고기를 많이 먹어서 인종 개량을 하자" 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 남자들을 해외로 보내 서양 여자들과 결혼 시켜 일본으로 데리고 와서 아이를 낳게 한다는 것인데, 그때 당시에도 괴상한 헛소리로 들리는 건 마찬가지여서 조롱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정작 다카하시 요시오 본인은 토종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다'''. 당시의 인종 개량에 대해서 외국인과의 혼혈만을 주장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인종 개량 중에서도 매우 극단적인 생각이었고, 당시에 인종 개량이라 하면 보통 [[의식주]] 같은 환경의 개량을 통한 인종 개량을 뜻했다. 다카하시 요시오의 주장을 비슷한 시기 다른 일본인 유명 인사가 한 것처럼 왜곡한 경우도 있다. 한국 인터넷에는 모리 아리노리와 [[후쿠자와 유키치]]가 서양인과의 혼혈을 주장했다는 이야기가 퍼져있는데, '''거짓이다'''. 아마 모리 아리노리가 일본어 대신 영어를 공용어화 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했고[* 참고로 모리 아리노리는 니시노 분타로라는 사람에게 옆구리를 칼에 찔려서 죽었는데, [[이세 신궁]] 방문 당시 불경하게 굴었다는 이유였다. 니시노 분타로가 쓴 종이에는 천황을 받드는 일본의 기초를 무너뜨리고 멸망시키려 한다고 적혀 있었고, 그 당시 모리 아리노리 같은 급진주의자들을 벼르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탈아론으로 유명한데다, 다카하시 요시오를 가르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와전되어 퍼진 [[루머]]인듯 하다.[* 다만 건강한 일본인끼리의 결혼은 장려했을 수 있다.] 다카하시 요시오의 일본 인종 개량론은 그 당시 일본 내에서 매우 극단적인 생각 취급받았다. 한국 인터넷에는 마치 일본이 국가적으로 주도해 혼혈 정책을 펼쳤다는 [[루머]]가 퍼져있는데 잘못된 사실이다. '''오히려 [[제국주의]]&[[군국주의]] 시절 일본은 [[귀축영미]]보다 [[야마토 민족|일본 민족]]이 훨씬 우월하니 더러운 혼혈을 배척하고, 순혈 일본 민족을 지켜야 한다는 사상이 매우 강했다'''.[* John W. Dower, War Without Mercy: Race & Power in the Pacific War p4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